한국사능력검정시험 제75회 심화 기출문제 해설 (1번~10번)

풀이에 대한 접근) 사유 재산과 계급이 발생한 가) 시대(송국리 유적)에 가장 적절한 생활상은 둥근 집터와 주거 규모 확대 및 주거 단위의 분화, 곡물 저장과 농경 발달 등으로 청동기 중기 시대의 특징이다.
① 주먹도끼 등 뗀석기를 처음 제작하였다. (×) - 구석기 시대의 특징입니다.
② 소를 이용한 깊이갈이가 널리 보급되었다. (×) - 고려 시대의 특징입니다.
③ 주로 강가의 동굴이나 막집에 거주하였다. (×) - 구석기 시대의 특징입니다.
④ 많은 인력을 동원하여 고인돌을 축조하였다. (○) - 청동기 시대의 대표적인 무덤 양식입니다.
⑤ 가락바퀴를 이용하여 실을 뽑기 시작하였다. (×) - 신석기 시대의 특징입니다.
따라서 정답은 ④ 번입니다.

풀이에 대한 접근) (가): 진나라가 진승·항우 등 반란으로 혼란해지며 연, 제, 조의 백성들이 진의 박해를 피해 준왕에게 망명, 준왕은 이들을 서쪽 변경에 거주하도록 함 → 위만(연나라 출신)이 준왕에게 망명해 서쪽 변경을 지키게 된 상황을 주소했다.
(나): 좌장군이 적을 격파하고 성 서쪽을 장기간 포위, 결국 성을 함락시킴 → 한고조 유방과 항우의 대립에서 한나라 장군 팽월의 주요 전술에 해당한다.
가)와 나) 사이에 있었던 사실로 진나라가 망하면서 준왕이 위만을 받아들여 변방을 지키게 했는데, 위만이 세력을 키워 준왕을 몰아내고 고조선 왕조를 찬탈, 위만조선 성립이 이 시기 핵심 사건이다.
① 위만이 왕위를 찬탈하였다. (○) - 진·한 교체기에 연나라 출신 위만이 준왕을 몰아내고 고조선 왕위를 차지한 사건이 이 시기 핵심입니다.
②이사부가 우산국을 복속시켰다.(×) - 신라 지증왕 시기입니다.
③ 온조가 위례성에 도읍을 정하였다. (×) - 초기 백제사 관련 사실입니다.
④ 관구검이 환도성을 침략하여 함락하였다. (×) - 고구려 동천왕 시기입니다.
⑤ 미천왕이 서안평을 공격하여 영토를 넓혔다. (×) - 고구려 미천왕 시기입니다.
따라서 정답은 ① 번입니다.

풀이에 대한 접근) APEC(아시아 태평양 경제 협력체) 정상회의가 열리는 신라시대 경주의 문화유산(금관총 금관, 황남대총 금관)을 찾으면 된다.
① (×) - 백제 금동 대향로입니다.
② (×) - 고구려 금동연가7년명여래입상입니다.
③ (×) - 가야의 판갑옷입니다.
④ (×) - 발해의 석등입니다.
⑤ (○) - 신라 천마총의 천마도입니다.
따라서 정답은 ⑤ 번입니다.

풀이에 대한 접근) 해당 문제는 경상북도 고령군(고령)이 다섯 번째 고도로 지정된 사실과, 방어력이 중시된 도읍이라는 설명을 통해 (가) 나라를 묻고 있습니다. 이는 가야(특히 대가야)를 지칭한다.
① 신라 진흥왕에 의해 복속되었다. (○) - 신라 진흥왕이 가야(대가야)를 복속시킨 것은 맞습니다.
② 광평성 등의 정치 기구를 마련하였다. (×) - 후고구려 시기의 궁예입니다.
③ 화백 회의를 통해 국정을 운영하였다. (×) - 신라의 귀족회의입니다.
④ 대가들이 사자, 조의, 선인을 거느렸다. (×) - 고구려입니다.
⑤ 박, 석, 김의 3성이 교대로 왕위를 계승하였다. (×) - 신라입니다.
따라서 정답은 ① 번입니다.

풀이에 대한 접근) 대대로, 처려근지, 욕살이라는 키워드에서 '그 나라'는 고구려임을 알 수 있다.
① 수도에 동시전이 설치되었다. (×)- 동시전은 신라의 시장을 감독하는 관청입니다. 이는 신라의 경제 상황에 해당합니다.
② 집집마다 부경이라는 창고가 있었다.(○)- 부경은 고구려의 민가에 있던 곡식 창고를 의미합니다. 이는 고구려의 경제 상황에 해당합니다.
③ 금속 화폐인 건원중보가 주조되었다. (×) - 고려 성종때의 철전입니다.
④ 솔빈부의 말이 특산품으로 수출되었다. (×) - 솔빈부는 발해의 행정 구역 중 하나이며, 발해의 말은 주요 특산품으로 수출되었습니다. 이는 발해의 경제 상황에 해당합니다.
⑤ 곡물을 대여하고 이자를 받은 내용을 좌관대식기에 남겼다. (×) - 좌관대식기는 신라의 통일신라 시대에 민정문서에 기록된 것으로, 이자율이나 토지, 인구 등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는 신라의 경제 상황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정답은 ② 번입니다.

풀이에 대한 접근) 혜공왕 피살, 무열왕계 직계 자손의 왕위 계승 단절, 진골 귀족들의 치열한 왕위 다툼 - 이 키워드들은 신라 하대의 특징을 정확히 짚고 있다. 신라 하대는 혜공왕 피살(780년) 이후부터 경순왕이 고려에 항복하는 935년까지의 시기를 말한다. 이 시기에는 왕위 쟁탈전이 격화되고, 중앙 정부의 통제력이 약화되며 지방에서 호족 세력이 성장하는 특징을 보인다. 양길 등, 스스로 성주 또는 장군이라 칭하는 호족 세력 성장 - 이 힌트는 신라 하대에 지방에서 중앙 정부의 통제를 벗어나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한 호족 세력의 등장을 언급하고 있다. 양길은 궁예의 스승으로 알려진 인물로, 신라 말기의 대표적인 호족 중 한 명이다. 종합하면, 문제는 신라 하대의 상황과 그 시기에 발생한 사건을 묻고 있다.
① 김흠돌의 난이 진압되었어요. (×)- 김흠돌의 난은 681년(신문왕 1년)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이는 신문왕이 왕권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로, 신라 중대에 해당합니다. 신라 하대의 상황과는 거리가 멉니다.
② 만적이 개경에서 봉기를 도모하였어요. (×) - 만적의 난은 1198년(고려 명종 28년)에 최충헌의 사노비 만적이 노비 해방을 주장하며 일으킨 봉기입니다. 이는 고려 시대에 해당합니다. 신라 하대와는 관련이 없습니다.
③ 관료전이 지급되고 녹읍이 폐지되었어요.(×)- 관료전 지급과 녹읍 폐지는 687년(신문왕 7년) 신문왕이 귀족 세력을 약화시키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단행한 개혁 조치입니다. 이는 신라 중대에 해당합니다. 신라 하대의 상황과는 거리가 멉니다.
④ 김헌창이 웅천주에서 반란을 일으켰어요. (○) - 김헌창의 난은 822년(헌덕왕 14년)에 일어났습니다. 김헌창은 왕위 계승에서 탈락한 인물로, 아버지 김주원이 왕이 되지 못한 것에 불만을 품고 웅천주(오늘날 공주)에서 반란을 일으켜 장안국을 세웠습니다. 이는 혜공왕 피살 이후 왕위 다툼이 치열하던 신라 하대에 발생한 대표적인 사건 중 하나입니다.
⑤ 이차돈의 순교를 계기로 불교가 공인되었어요. (×) - 이차돈의 순교를 통한 불교 공인은 527년(법흥왕 14년) 신라 법흥왕 때의 일입니다. 이는 삼국시대(신라 상대)에 해당합니다. 신라 하대와는 거리가 멉니다.
따라서 정답은 ④ 번입니다.

풀이에 대한 접근) 당(唐)이 광주사마 장손사를 보내 수(隋) 병사의 해골을 묻은 곳에 와서 제사를 지내고, 당시에 [고구려가] 세운 경관(京觀)을 허물었다. 여기서 '경관(京觀)'은 승전을 기념하기 위해 적의 유해를 한곳에 모아 만든 무덤을 뜻한다.
당이 수나라 병사의 유해를 수습하고 고구려가 세운 경관을 허문 것은, 수나라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고구려의 위상을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수나라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거나, 패배한 수나라 병사들을 위로하는 명분을 내세워 고구려에 대한 견제를 시작하는 외교적 행위로 볼 수 있다. 이는 고구려-당 관계의 변화를 암시한다.
봄 2월에 왕이 많은 사람을 동원하여 동북의 부여성에서 동남의 바다에 이르기까지 천리 남짓에 걸쳐 장성을 쌓았다.
이 '장성(長城)'은 고구려가 당의 침략에 대비하여 쌓은 '천리장성(千里長城)'을 의미한다. 천리장성은 631년(영류왕 14년)부터 647년(보장왕 6년)까지 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종합하면, 이 자료는 고구려가 당의 견제와 침략에 대비하여 천리장성을 쌓는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이는 7세기 전반의 고구려-당 전쟁 직전의 상황 또는 전쟁 대비 상황임을 유추할 수 있다.
① 을지문덕이 살수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 - 살수대첩은 612년(영양왕 23년)에 일어났습니다. 이는 천리장성 축조(631년 이후)보다 이전의 사건입니다.
② 고구려가 신라에 침입한 왜를 물리쳤다. (×) - 이것은 4세기 말에서 5세기 초 광개토대왕 때의 일로, 400년에 광개토대왕이 신라를 구원하여 왜군을 물리친 사건을 의미합니다. 천리장성 축조보다 훨씬 이전의 사건입니다.
③ 김무력이 관산성에서 백제군을 격파하였다. (×) - 관산성 전투는 554년(진흥왕 15년)에 신라가 백제 성왕을 전사시킨 전투입니다. 이 또한 천리장성 축조보다 이전의 사건입니다.
④ 연개소문이 정변을 일으켜 권력을 장악하였다. (○) - 연개소문의 정변은 642년(영류왕 25년)에 일어났습니다. 이 정변으로 연개소문은 영류왕을 시해하고 보장왕을 옹립했으며, 고구려의 대막리지가 되어 권력을 장악했습니다. 천리장성 축조가 631년부터 시작되었으므로, 천리장성 축조 이후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장성 축조 도중에 발생). 이 정변은 고구려-당 전쟁의 중요한 배경이 됩니다.
⑤ 백제가 평양성을 공격하여 고구려 왕이 전사하였다. (×) - 이것은 371년(근초고왕 26년) 백제 근초고왕이 고구려의 평양성을 공격하여 고구려 고국원왕을 전사시킨 사건입니다. 천리장성 축조보다 훨씬 이전의 사건입니다.
따라서 정답은 ④ 번입니다.

풀이에 대한 접근) 조영이 죽으니, 시호를 고왕이라 하였다. 아들 무예가 왕위에 올라 영토를 크게 개척하니, 동북의 모든 오랑캐들이 두려워하여 신하가 되었다. 또 연호를 인안(仁安)으로 고쳤다.
- '고왕(高王)'은 발해를 건국한 대조영의 시호이다.
- '무예'는 고왕의 아들로, 발해 2대 왕인 무왕(武王) 대무예를 지칭한다.
- 무왕은 영토를 크게 확장하고 동북 오랑캐들을 복속시켰으며, 연호로 '인안(仁安)'을 사용했다. 이는 발해의 독자적인 천하관을 보여준다.
무예가 죽자, 시호를 무왕이라 하였다. 아들 흠무가 왕위에 올라 연호를 대흥(大興)으로 고쳤다.
- '무왕'은 발해 2대 왕 대무예를 지칭하며, 그 아들 '흠무'는 발해 3대 왕인 문왕(文王) 대흠무를 지칭한다.
- 문왕은 연호로 '대흥(大興)'을 사용했으며, 이 시기는 발해의 전성기로 중앙 통치 체제를 정비하고 문화를 발전시켰다.
인수가 왕위에 올라 연호를 건흥(建興)으로 고치니, 그의 4대조 아발은 조영의 아우이다. 인수는 바다 북쪽의 여러 부(部)를 토벌하고 영역을 크게 넓힌 공이 있다.
- '인수'는 발해 10대 왕인 선왕(宣王) 대인수를 지칭한다.
- 선왕은 연호로 '건흥(建興)'을 사용했다.
- 그의 4대조 아발이 대조영의 아우라는 언급은 선왕 대인수가 대조영의 후손이기는 하지만, 직계는 아님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문왕의 아들 무예의 아들).
- 선왕 시기에 바다 북쪽의 여러 부족들을 정복하여 영토를 크게 확장했으며, 이 시기에 발해는 '해동성국(海東盛國)'이라 불렸다.
이상의 내용을 종합해 볼 때, 제시된 자료는 발해에 대한 설명이다. 발해의 역대 왕(고왕, 무왕, 문왕, 선왕)과 그들의 연호, 주요 업적을 언급하고 있다.
① 골품에 따라 관등 승진을 제한하였다. (×) - 골품제는 신라의 독자적인 신분 제도로, 관직 등용을 신분(골품)에 따라 제한했습니다. 발해에는 골품제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② 주자감을 설치하여 인재를 양성하였다. (○) - 주자감은 발해의 최고 교육기관으로, 유학 교육을 통해 관리 등용을 위한 인재를 양성했습니다. 이는 발해에 대한 설명으로 옳습니다.
③ 내신좌평 등 6좌평의 관제를 정비하였다. (×) - 내신좌평, 위사좌평 등 6좌평은 백제의 중앙 관제입니다.
④ 국경 지역인 양계에 병마사를 파견하였다. (×) - 압록강에 병마사를 파견한 것은 고려의 국방 체제와 관련이 있습니다. 특히 고려 초기 북방 개척과 관련하여 압록강 방어선에 병마사를 두기도 했습니다. 발해의 행정 구역은 5경 15부 62주였습니다.
⑤ 상수리 제도를 통해 지방 세력은 견제하였다. (×) - 상수리 제도는 통일 신라 시대에 지방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지방 유력자나 그 자제를 수도로 불러 일정 기간 머무르게 했던 제도입니다. 발해에는 상수리 제도 대신 수도인 상경용천부에 각 지방의 자제를 보내 숙위하게 하는 제도가 있었으나, '상수리 제도'라는 명칭은 신라의 것입니다.
따라서 정답은 ② 번입니다.

풀이에 대한 접근) 제시된 이미지는 인스타그램 게시물 형태로, 'baekje_history' 계정에서 백제역사유적지구 세계유산 등재 10주년을 기념하는 내용이다. 이 게시물은 백제역사유적지구를 구성하는 8개 유적을 지도와 함께 보여주고 있다.
지도의 '가' 지역은 '공주'와 관련되어 있으며, 하위 유적으로는 '공산성'과 '송산리 고분군'이 표시되어 있다. 다른 지역으로는 '부여'와 '익산'이 있으며, 각각 관련된 유적이 나열되어 있다. 문제는 '가' 지역(공주)에 대한 탐구 활동으로 가장 적절한 것을 고르는 것이다.
① 정약전이 자산어보를 저술한 곳을 알아본다. (×) - 정약전은 조선 후기 실학자로, 자산어보를 흑산도에서 저술했습니다. 공주와는 관련이 없습니다.
② 비담과 염종이 반란을 일으킨 곳을 찾아본다. (×) - 비담과 염종의 난은 신라 선덕여왕 때 일어났습니다. 공주가 아닌 신라의 수도였던 서라벌(경주)과 관련이 있습니다.
③ 성왕이 새로운 도읍지로 정한 곳을 검색한다. (○) - 성왕은 538년 사비(지금의 부여)로 도읍을 옮기고 국호를 남부여로 바꾸었습니다. 공주는 웅진 시대의 도읍이었으나, 새로운 도읍지는 아닙니다. 하지만 공주도 성왕이 즉위하고 약 10년간 도읍으로 삼았던 곳입니다.
④ 윤충이 의자왕의 명을 받아 함락시킨 곳을 확인한다. (×) - 윤충은 백제 의자왕의 장수로, 신라 대야성을 함락시켰습니다. 공주와는 관련이 없습니다.
⑤ 신립이 배수의 진을 치고 왜군과 맞선 곳을 답사한다. (×) - 신립 장군이 배수의 진을 치고 왜군에 맞선 전투는 임진왜란 당시 충주 탄금대 전투입니다. 공주와는 관련이 없습니다.
따라서 정답은 ③ 번입니다.

풀이에 대한 접근) (가) 주요 사건: 견훤이 신라의 수도로 들어와 포석정에서 연회를 벌이던 신라 왕(경애왕)을 죽이고 새로운 왕(경순왕)을 세운 사건이다.
시기: 이 사건은 927년(신라 경애왕 4년, 고려 태조 10년)에 발생한 견훤의 신라 침공을 묘사하고 있다. 견훤은 이 침공으로 신라의 왕을 살해하고 약탈을 자행했다.
(나) 주요 사건: 견훤이 고창군(현 안동)을 포위하자 유금필이 왕(태조 왕건)에게 싸우지 않고 먼저 패배를 걱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간언하며 공격을 주장하고 왕이 이를 허락하는 내용이다.
시기: 이 사건은 930년(고려 태조 13년)에 발생한 고창 전투(안동 전투)를 묘사하고 있다. 이 전투에서 고려는 후백제에 대승을 거두며 후삼국 통일의 결정적인 발판을 마련했다.
따라서 (가)와 (나) 사이의 시기는 927년 견훤의 신라 침공 이후부터 930년 고창 전투 이전까지, 즉 대략 927년 말부터 930년 초까지의 기간을 의미한다.
① 신숭겸이 공산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 - 927년, 견훤이 신라를 공격하고 돌아가는 길에 대구 공산에서 고려 태조 왕건의 군대와 격돌한 전투입니다. 이 전투에서 고려는 대패하고 왕건은 신숭겸의 희생으로 겨우 목숨을 건졌습니다. 신숭겸은 이때 전사했습니다. 927년 (가) 사건 직후에 발생했습니다. 따라서 (가)와 (나) 시기 안에 들어갑니다.
②안승이 보덕국의 왕으로 책봉되었다.(×) - 안승은 고구려 부흥 운동을 이끌던 인물로, 674년(문무왕 14년)에 신라에 의해 금마저(현 익산)에 보덕국을 세우고 왕으로 책봉되었습니다. 7세기 후반의 일로, 후삼국 시대인 10세기 초의 (가)와 (나) 사이 시기와는 거리가 매우 멉니다.
③흑치상지가 임존성에서 군사를 일으켰다.(×) - 흑치상지는 백제 부흥 운동을 이끈 대표적인 인물 중 한 명으로, 백제가 멸망한 직후인 660년대에 임존성에서 군사를 일으켰습니다. 7세기 중반의 일로, (가)와 (나) 시기와는 거리가 매우 멉니다.
④ 최치원이 왕에게 시무 10여 조를 건의하였다. (×) - 최치원의 시무 10여 조 건의: 신라 말의 학자 최치원은 진성여왕(재위 887~897)에게 사회 개혁 방안을 담은 시무 10여 조를 건의했습니다. 9세기 말의 일로, (가)와 (나) 시기보다 앞섭니다.
⑤ 왕건이 일리천 전투에서 신검에게 승리하였다.(×) - 936년, 고려가 후삼국 통일을 완성하는 마지막 전투로, 왕건이 후백제 신검의 군대를 일리천(현 구미 부근)에서 격파했습니다. (나) 사건(930년)보다 뒤의 일입니다. 따라서 (가)와 (나) 사이 시기에는 들어가지 않습니다.
따라서 정답은 ① 번입니다.
★ 개인적으로 만드는 기출문제 해설이기 때문에 공부를 하시다가 오류사항이 있으실 경우에는 댓글로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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