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능력검정시험 제52회 심화 기출문제 해설 (21번~30번)
풀이에 대한 접근) (가) 인조반정(1623)은 인목대비의 폐위와 영창대군의 살해(폐모살제)를 명분으로 반란이 일어나 광해군을 폐위하고 인조를 세운 사건이다.
(나) 병자호란(1636) 때, 조정에서는 현실을 깨닫고, 마침내 항복하기로 결정하였다. 1637년 인조는 세자와 대신을 거느리고 남한산성을 나와, 청의 요구대로 삼전도에 설치된 수항단에서 청 태종에게 굴욕적인 항복 의례를 한 뒤, 한강을 건너 환도하였다.
(다) 정묘호란(1627) 때, 후금이 접근해오자 인조는 강화도로 피신하였다.
② (가) - (다) - (나)
따라서 정답은 ② 번입니다.
풀이에 대한 키워드) [신해박해(1791)]
1790년 베이징 교구에서 조선에 제사 금지령을 내리자 윤지충은 신주를 불살랐다. 1791년에 윤지충이 모친상을 당하였는데 모친의 유언에 따라 조문을 받지 않고 로마 가톨릭 예식으로 장례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신앙을 버리도록 회유하였으나 듣지 아니하였고 전주에서 참수형에 처해졌다. 조선에서 일어난 최초의 가톨릭 교회에 대한 박해사건으로 신해박해라 부른다.
따라서 정답은 ② 번입니다.
풀이에 대한 접근) [북벌 운동] 북벌 운동은 효종 때 왕성하게 전개되었는데, 송시열, 송준길, 이완 등이 중심이 되어 어영청을 근거지로 군대의 양성과 훈련, 성곽 보수, 수리 등 북벌을 준비하였다.
① 나선 정벌에 조총 부대를 파견하였다. (○) - 효종 때 청나라와 러시아의 국경분쟁에 청나라의 요청으로 조총군 100명을 파견하였습니다. 1차, 2차로 2번에 걸쳐서 진행되었으며 나선 정벌이라 불립니다.
② 왕의 친위 부대인 장용영을 설치하였다. (×) - 정조는 스스로 초월적 군주로 군림하면서 스승의 입장에서 신하들을 양성하고 재교육시키고자 초계문신제를 시행하였으며, 국왕의 친위대인 장용영을 설치하였습니다.
③ 청과의 국경을 정하는 백두산정계비를 세웠다. (×) - 숙종 때 조선과 청의 두 나라 대표가 백두산 일대를 답사하고 국경을 확정하여 정계비를 세웠습니다.
④ 역대 문물을 정리한 동국문헌비고를 편찬하였다. (×) - 영조는 학문과 제도를 정비하였는데, 법전인 속대전, 의례서인 속오례의, 백과사전인 동국문헌비고 등을 편찬하였습니다.
⑤ 수조권이 세습되던 수신전과 휼양전을 폐지하였다. (×) - 세조 때 실시한 직전법은 중앙 집권을 강화하고 재정을 확보하기 위해 실시한 토지 제도입니다. 종래 수신전, 휼양전을 몰수하고 현직 관리에게만 토지를 지급하였습니다.
따라서 정답은 ① 번입니다.
풀이에 대한 접근) 이익은 농업 중심의 개혁론을 대표하는 인물로, 성호사설, 곽우록을 통하여 토지의 배분을 균등하게 하기 위한 한전론, 토지에 바탕을 둔 조세제도를 주장하였다. 16세기 이후의 모습을 찾아본다.
① 염포의 왜관에서 교역하는 상인 (×) - 조선 전기 세종 시기입니다.
② 계해약조의 문서를 작성하는 관리 (×) - 조선 전기 세종 시기입니다.
③ 과전법에 따라 토지를 지급받는 관원 (×) - 고려말 공양왕 시기입니다.
④ 고추, 담배를 상품 작물로 재배하는 농민 (○) - 17세기 이후입니다.
⑤ 화통도감에서 화약 무기를 시험하는 군인 (×) - 고려말 우왕 시기입니다.
따라서 정답은 ④ 번입니다.
풀이에 대한 접근) [균역법] 군포의 폐단을 시정하고자 영조 때 실시한 균역법은 농민들에게 부과한 군포를 1년에 2필에서 1필로 감소시킨 정책이다.
① 준천사를 신설하여 홍수에 대비하였다. (○) - 영조는 청계천 홍수 피해 방지를 위해 준천사를 설치하여 대대적인 공사를 하였습니다.
② 대외 관계를 정리한 동문휘고를 간행하였다. (×) - 조선 후기 정조 시기입니다.
③ 전제상정소를 두어 전분 6등법을 제정하였다. (×) - 조선 전기 세종 시기입니다.
④ 총융청과 수어청을 창설하여 도성을 방어하였다. (×) - 조선 후기 인조 시기입니다.
⑤ 삼정의 문란을 해결하기 위해 삼정이정청을 두었다. (×) - 조선 후기 철종 시기입니다.
따라서 정답은 ① 번입니다.
① (가) - 팔도지리지를 참고하여 성종 때 완성되었다. (×) - 성종의 명으로 편찬된 지리서인 동국여지승람입니다.
② (나) - 정상기가 100리 척을 사용하여 제작하였다. (○) - 조선 영조때 정상기가 동국지도를 제작하였습니다.
③ (다) - 한치윤이 500여 종의 자료를 참고하여 편찬하였다. (×) - 조선 순조때의 해동역사입니다.
④ (라) - 복거총론에서 거주지의 이상적인 조건을 제시하였다. (×) - 실학자 이중환은 지리서인 택지리를 저술하였습니다.
⑤ (마) - 목판으로 인쇄되었으며 10리마다 눈금이 표시되어 있다. (×) -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입니다.
따라서 정답은 ② 번입니다.
풀이에 대한 접근) 홍대용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로 중상학파(북학파)이다. 1765년 청에 가서 서양 문물을 견학하고, 천문학에 대한 지식을 넓혔으며 기존의 혼천의를 개량하였다. 청에 왕래하면서 얻은 경험을 토대로 담헌서에 수록되어 전하고 있다.
① 의산문답에서 무한 우주론을 주장하였다. (○) - 홍대용은 청에 왕래하면서 얻은 경험을 토대로 '의산문답'의 저술을 남겼습니다.
② 기기도설을 참고하여 거중기를 설계하였다. (×) - 정약용입니다.
③ 자동 시보 장치를 갖춘 자격루를 제작하였다. (×) - 세종 때 장영실입니다.
④ 사상 의학을 정립한 동의수세보원을 편찬하였다. (×) - 19세기 이제마입니다.
⑤ 서양의 과학 기술을 정리한 지구전요를 저술하였다. (×) - 지구전요는 실학자 최한기가 만든 과학 및 지리 책입니다.
따라서 정답은 ① 번입니다.
풀이에 대한 접근) 홍경래의 난은 19세기 세도 정치기에 발생된 민란이다. 당시 서북민(평안도 사람)에 대한 차별이 원인이 되어 반란은 몰락한 양반인 홍경래의 지휘 하에 우군칙, 김사용 등의 몰락한 양반과 영세 농민, 중소 상인, 광산 노동자 등이 합세하여 나타났다.
① 박규수가 안핵사로 파견되었다. (×) - 진주(임술) 농민 봉기입니다.
② 조병갑의 탐학이 계기가 되었다. (×) - 동학농민운동입니다.
③ 선혜청과 일본 공사관을 공격하였다. (×) - 임오군란입니다.
④ 서북인에 대한 차별에 반발하여 일어났다. (○) - 홍경래의 난은 19세기 최초의 반 세도정치 민란으로 농민층의 정치적 자각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⑤ 남접과 북접이 연합하여 조직적으로 전개되었다. (×) - 동학농민운동입니다.
따라서 정답은 ④ 번입니다.
풀이에 대한 접근) (가) 흥선 대원군은 만동묘를 철폐하고 (1865), 화양 서원을 포함하여 붕당 근거지로서 백성을 수탈해 온 서원에 대한 납세를 실시하였다(1868). 또한 서원을 대폭 정리하여 47개소만 남긴 채 철폐, 정리하였고, 아울러 서원이 소유하고 있는 토지와 노비를 몰수하여 국가 재정을 확충하였다.
(나) 흥선대원군은 최익현 등의 유학자를 앞세운 고종의 견제로 1873년 정사에서 물러났다.
① 신식 군대인 별기군이 창설되었다. (×) - 1881년 (고종 18)에 설치된 신식 군대입니다.
② 서재필 등이 독립신문을 발행하였다. (×) - 1896년 4월 7일에 창간된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신문이자 순한글 신문입니다.
③ 종로와 전국 각지에 척화비가 세워졌다. (○) - 흥선대원군은 통상을 요구하면서 침입한 프랑스와 미국의 침략을 격퇴한 후 전국 각지에 척화비를 세워 통상 수교 거부의 의지를 널리 알렸습니다.
④ 김옥균 등 개화 세력이 정변을 일으켰다. (×) - 갑신정변은 우정청국 개국 축하연(1884)을 이용하여 개화당 정부를 수립한 뒤, 14개 조의 개혁 요강을 마련하였습니다.
⑤ 조청 상민 수륙 무역 장정을 체결하였다. (×) - 임오군란 (1882) 이후에 발생한 사건입니다.
따라서 정답은 ③ 번입니다.
풀이에 대한 접근) 청나라에 영선사로 파견된 김윤식은 조선 학생들을 천진의 병기 공장 (기기국)에 배치하였고 무기 제조 기술을 습득하여 귀국하였다.
① 기기창 설립의 계기가 되었다. (○) - 청나라에서 귀국 후, 습득한 지식을 바탕으로 신식무기를 제조하기 위한 공장으로 기기창을 설치하였습니다.
② 회답 겸 쇄환사로 파견되었다. (×) - 임진왜란이 끝난 뒤 조선은 여러 차례에 걸쳐 외교 사절단(회답 겸 쇄환사)을 파견하여 전쟁 중에 끌려간 조선인들을 데리고 돌아왔으며, 친선 관계를 두텁게 하였습니다.
③ 조선책략을 처음으로 소개하였다. (×) - 황쭌센이 동양 3국이 펼쳐야 할 외교 정책을 쓴 책으로서, 2차 수신사 김홍집이 소개하였습니다.
④ 민영익, 홍영식, 서광범 등이 참여하였다. (×) - 미국에 파견된 보빙사는 서양에 파견된 최초의 사절단으로 민영익이 전권대사로 사절단을 이끌었습니다.
⑤ 개화 반대 여론으로 인해 비밀리에 출국하였다. (×) - 일본을 살펴보기 위하여 박정양, 홍영식 등을 위원으로 조사시찰단(신사유람단)을 파견하였습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위정척사론이 대립하고 있어서 암행어사 신분으로 비밀리에 파견하였습니다.
따라서 정답은 ① 번입니다.
★ 개인적으로 만드는 기출문제 해설이기 때문에 공부를 하시다가 오류사항이 있으실 경우에는 댓글로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제52회 심화 기출문제 해설 (41번~50번) (0) | 2024.02.10 |
---|---|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제52회 심화 기출문제 해설 (31번~40번) (0) | 2024.02.09 |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제52회 심화 기출문제 해설 (11번~20번) (0) | 2024.02.07 |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제52회 심화 기출문제 해설 (1번~10번) (0) | 2024.02.06 |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제51회 심화 기출문제 해설 (41번~50번) (0) | 2024.02.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