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능력검정시험 제74회 심화 기출문제 해설 (11번~20번)
풀이에 대한 접근) 문제는 '이 왕'이 추진한 정책을 묻고 있다. 주어진 자료에서 '이 왕'은 "호족 세력을 숙청하고 왕권을 강화"한 왕이다.
정치 : 억울하게 노비가 된 사람을 양인으로 풀어주는 노비안검법 실시
외교 : 후주와의 사신 왕래로 대외 관계 안정
사회 : 빈민을 구제하는 제위보 설치
이 자료는 고려 광종(光宗)의 업적을 설명하고 있다.
① 폐정 개혁을 목표로 정치도감을 설치하였다. (×) - 이는 고려 말 최충헌의 '도방' 또는 조선의 '폐정개혁'과 관련되었기에 광종과 무관합니다.
② 광덕, 준풍이라는 독자적 연호를 사용하였다. (○) - 광종은 독자적 연호(광덕, 준풍)를 사용하여 왕권을 강화하였습니다.
③ 예의상정소에서 상정고금예문을 편찬하였다. (×) - 고려 고종 때의 일입니다.
④ 전국에 12목을 설치하고 지방관을 파견하였다. (×) - 성종의 업적입니다.
⑤ 관리에게 등급에 따라 전지와 시지를 지급하였다. (×) - 전시과 제도로, 경종 때 실시되었습니다.
따라서 정답은 ② 번입니다.
풀이에 대한 접근) (가) : 거란에서 사신과 낙타 50필을 보냈으나, 고려 왕이 사신과 낙타를 모두 죽였다.
→ 이는 고려 태조 시기(942년) 거란 사신과 낙타 사건으로 고려가 거란과의 외교를 거부하고 강경책을 쓴 사건임을 알 수 있다.
(나) : 왕이 나주로 피난 중, 거란 군대가 접근했다는 보고를 받고 조용히 이동하라는 조언을 받았다. → 이는 거란의 침입 때 고려 왕이 남쪽으로 피난하던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이 두 자료는 모두 거란의 1차 침입(993년) 전후의 상황을 보여준다.
① 묘청이 칭제 건원을 주장하였다. (×) - 후삼국 시대 후백제 관련 사건으로 제시된 사건들과 관련이 없습니다.
② 강감찬이 흥화진 전투에서 승리하였다. (×) - 거란 3차 침입(1019년) 귀주대첩으로 시기상 맞지 않습니다.
③ 서희의 활약으로 강동 6주를 획득하였다. (○) - 거란 1차 침입(993년) 때 서희가 담판으로 강동 6주를 얻음. (가)~(나) 사이에 해당합니다.
④ 최우가 강화도로 도읍을 옮겨 항전하였다. (×) - 몽골 침입기 사건으로 제시된 사건들과 관련이 없습니다.
⑤ 윤관이 별무반을 이끌고 동북 9성을 개척하였다. (×) - 12세기 여진 정벌로 제시된 사건들과 관련이 없습니다.
따라서 정답은 ③ 번입니다.
풀이에 대한 접근) (가) 국가의 문화유산으로 적절하지 않은 것을 고르는 문제로, (가) 시대의 문화유산 기념품 디자인 발표회에서 영주 부석사 소조여래좌상을 소재로 열쇠고리를 만든다고 했다. 이 불상은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이다. 따라서 (가) 시대는 고려시대임을 알 수 있다.
① (×) - 기마인물형 토기로 삼국시대 가야의 대표 토기입니다.
② (○) - 청자 받침 연꽃 모양 향로는 고려 청자로, 고려 시대의 대표적 유물입니다.
③ (○) - 고려 청자 매병입니다.
④ (○) - 고려시대 예술을 대표하는 나전칠기 유물인 ‘나전국화넝쿨무늬합’입니다.
⑤ (○) - 고려 전기, 송나라의 영향을 받아 강원도 오대산에 위치한 월정사 8각 9층 석탑입니다.
따라서 정답은 ① 번입니다.
풀이에 대한 접근) (가) 김보당의 난
김보당이 정중부, 이의방을 토벌하고 폐위된 의종을 복위시키기 위해 군사를 일으킨 사건으로 이는 1173년 무신정권 초기, 정중부·이의방 집권기에 발생했다.
(나) 봉사10조의 제출 - 최충헌이 최충수와 함께 봉사10조(폐정 개혁안)를 올린 사건으로 이는 이의민 집권 이후, 최충헌이 집권을 시작하는 시기(1196년)로, 무신정권 중기이다.
(다) 삼별초의 항쟁
원종이 몽골과의 강화 후 개경으로 환도했으나, 삼별초가 반발하여 승화후 온을 왕으로 옹립하고 진도로 이동해 저항한 사건으로 이는 무신정권 말기, 1270년 이후의 일이다.
일어난 순서는 (가) → (나) → (다)입니다.
① (가)-(나)-(다)
따라서 정답은 ① 번입니다.
풀이에 대한 접근) 자료에는 "7재를 설치하였다"와 "무학이 점차 번성하여 장차 문학하는 사람들과 각을 세워 불화하게 되면 매우 편치 못하게 될 것이다"라는 내용이 나와 있다.
여기서 7재란 고려 예종 때 국자감(국립 대학)에 설치된 7가지 전문 교육 과정을 말하며, 무학(무과)이 강예재로 불렸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왕이 무학의 성행을 경계하고 문학(문과)을 중시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는 고려 예종 시기의 교육 제도와 사회 분위기를 반영한 것입니다.
① 서얼이 통청 운동을 전개하였다.(×) - 조선 후기 서얼 차별 완화 운동으로, 고려와 관련이 없습니다.
② 사상절목에 따라 사창제가 시행되었다. (×) - 사창제는 조선 후기 농민 구제를 위한 곡물 대여제도로, 고려시대와 관계없습니다.
③ 왕조 교체를 예언하는 정감록이 유포되었다. (×) - 정감록은 조선 후기의 예언서로, 고려시대 자료와는 무관합니다.
④ 병자에게 약을 지급하는 혜민국이 설치되었다. (○) - 혜민국은 고려시대 설치된 의료 기관입니다.
⑤ 국산 약재와 치료 방법을 정리한 향약집성방이 간행되었다. (×) - 향약집성방은 조선시대에 간행되었습니다.
따라서 정답은 ④ 번입니다.
풀이에 대한 접근) '불일보조국사'라는 시호를 받은 (가)의 행적을 담고 있는 송광사 보조국사비
비문에 그가 정혜결사를 조직하고 '권수정혜결사문'을 지었다는 내용, 국왕에게 송광산 길상사(吉祥寺)를 조계산 수선사(修禪寺)로 이름을 바꿔달라고 직접 글씨를 써서 보냈다는 내용에서 고려시대 대표적인 승려인 '지눌'임을 알 수 있다.
① 법화 신앙에 중점을 둔 백련 결사를 이끌었다. (×) - 백련 결사는 '요세'가 이끈 결사로, 지눌이 아닙니다.
② 돈오점수를 바탕으로 꾸준한 수행을 강조하였다.(○) - 보조국사 지눌에 대한 올바른 설명입니다.
③ 승려들의 전기를 기록한 해동고승전을 저술하였다. (×) - 해동고승전은 각훈이 저술하였습니다.
④ 선문염송집을 편찬하고 유불 일치설을 주장하였다.(×) -지눌의 제자이자 조계산 수선사의 제2세인 진각국사 혜심(慧諶)이 편찬한 책입니다.
⑤ 성상융회를 제창하여 교종 내 대립을 해소하고자 하였다. (×) - 성상융회는 균여가 주장한 사상입니다.
따라서 정답은 ② 번입니다.
풀이에 대한 접근) "권문세족이 도평의사사를 장악하고 대농장을 경영한 이 시기"
"많은 여성이 공녀로 끌려갔어.", "지배층을 중심으로 변발과 호복이 유행하였어." - 세 학생의 대화는 모두 고려 후기 원 간섭기(13세기 후반 ~ 14세기 후반)의 사회 모습을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보기 중에서 이 시기에 해당하는 것을 찾으면 된다.
① 농상집요를 소개하는 관리 (○) - 농상집요는 고려시대 '이암' 이란 사람이 원나라에서 수입한 농서입니다.
② 흑창에서 곡식을 빌리는 농민 (×) - 흑창은 고려 초기 태조 왕건이 빈민 구제를 위해 설치한 구휼 기관입니다. 이후 성종 때 의창으로 이름이 바뀝니다.
③ 사섬서에서 저화를 발행하는 장인 (×) - 사섬서(司贍署)는 고려 말 공양왕 때 저화(楮貨)라는 지폐를 발행하기 위해 설치된 관청입니다.
④ 선혜청에서 공가(貢價)를 받는 상인 (×) - 선혜청(宣惠廳)은 조선 시대에 대동법의 시행을 위해 설치된 관청입니다. 대동법으로 공물을 쌀로 내게 되자, 필요한 물품을 조달하는 공인(貢人)에게 그 대가(공가)를 지급했습니다.
⑤ 상평통보로 물건을 거래하는 보부상 (×) - 상평통보(常平通寶)는 조선 후기 숙종 때부터 널리 유통된 화폐입니다.
따라서 정답은 ① 번입니다.
풀이에 대한 접근) 고려 시대 중앙 관제(정치 제도)에 대한 이해도를 묻는 문제로 주어진 마인드맵은 고려의 중앙 관제를 당나라와 송나라의 영향을 받은 부분, 그리고 고려의 독자적인 기구로 나누어 정리하고 있습니다.
ㄱ. ㉠ - 좌·우사정이 6부를 나누어 관할하였다. (2성 6부) : '좌사정'과 '우사정'이 정당성(상서성에 해당)의 장관으로서 6부를 각각 3개씩 나누어 관할했던 것은 발해의 3성 6부제 특징입니다. 고려의 2성 6부제에서 6부는 상서성에 소속되어 있었고, 실질적인 국정 총괄은 중서문하성의 재신(宰臣)들이 담당했습니다.
ㄴ. ㉡ - 군사 기밀과 왕명 출납을 담당하였다. (중추원) : 중추원은 두 가지 주요 기능을 가졌습니다. 2품 이상의 관리인 추밀(樞密)은 군사 기밀 등 국가의 중요한 정책을 다루었고, 3품의 관리인 승선(承宣)은 왕명 출납, 즉 왕의 명령을 전달하고 보고를 올리는 비서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ㄷ. ㉢ - 5품 이하의 관원에 대한 서경권을 행사하였다. (삼사) : 고려의 삼사(三司)는 국가의 재정, 즉 곡식과 화폐의 출납에 대한 회계를 담당하는 기구였습니다. 관원 임명에 대한 동의권인 서경권(署經權)을 행사한 기구는 대간(臺諫)입니다. 대간은 어사대의 관원(대관)과 중서문하성의 낭사(간관)로 구성되었습니다. 특히 5품 이하 관리의 임명에 대한 서경권은 대간의 주요 권한 중 하나였습니다.
ㄹ. ㉣ - 재추를 중심으로 국방, 군사 문제를 논의하였다. (도병마사) : 도병마사(都兵馬使)는 고려의 독자적인 회의 기구로, 국방과 군사 문제를 논의하는 최고 기구였습니다. 이 회의에는 재추(宰樞)가 참여했는데, '재추'는 중서문하성의 재신(宰臣)과 중추원의 추밀(樞密)을 함께 부르는 말입니다. 즉, 국가의 최고위 관료들이 모여 국방 문제를 결정하는 곳이었습니다.
④ ㄴ, ㄹ
따라서 정답은 ④ 번입니다.
풀이에 대한 접근) "조선 왕실의 신위(神位) 제자리로" 이 문구가 가장 결정적인 단서이다. '신위'는 돌아가신 분의 영혼을 모시는 나무패를 의미한다. 즉, 이 장소는 조선 시대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시는 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조선 왕과 왕비, 대한 제국 황제와 황후의 신위 49위를 (가)(으)로 다시 모셔오는 환안제(還安祭)" : '환안제'는 신위를 원래의 자리로 편안하게 다시 모시는 제사를 의미한다. 즉, (가)는 신위가 원래 있어야 할 공식적인 제사 공간이다.
"(가)의 보수 공사" : (가) 건물이 보수 공사를 해서 신위를 잠시 다른 곳(창덕궁 옛 선원전)에 옮겼다가, 공사가 끝나자 다시 제자리로 모셔왔다는 내용이다.
이 단서들을 종합해 보면, (가)는 역대 조선 국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국가 최고의 사당으로, 이 장소는 바로 종묘(宗廟)이다.
① (○) - 길게 늘어선 건물과 넓은 월대(月臺, 뜰)가 보입니다. 매우 장엄하고 신성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이 사진은 종묘의 정전(宗廟 正殿) 입니다. 종묘는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지문의 내용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② (×) - 연못 가운데에 있는 육각형의 아름다운 정자입니다. 이 건물은 경복궁 향원정(香遠亭) 입니다. 왕과 왕실 가족이 휴식을 취하거나 경치를 감상하던 곳입니다.
③ (×) - 서양식 기둥과 한국 전통 양식이 섞인 독특한 건물입니다. 이 건물은 덕수궁 정관헌(靜觀軒) 입니다. 고종 황제가 커피를 마시거나 외교 사절을 맞이하는 등 휴식 및 연회 공간으로 사용했습니다.
④ (×) - 언덕 위에 있는 누각 건물입니다. 이 건물은 창덕궁 후원의 주합루(宙合樓) 입니다. 규장각 도서를 보관하던 왕립 도서관 역할을 했습니다.
⑤ (×) - 여러 층으로 된 목조 탑입니다. 이 건물은 법주사 팔상전(法住寺 捌相殿)으로,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남은 5층 목탑입니다. 석가모니의 생애를 8장면으로 나누어 그린 팔상도를 모신 불교 건축물입니다.
따라서 정답은 ① 번입니다.
풀이에 대한 접근) "오자치는 (가) 왕이/가 호패법을 재실시하는 등 지방 세력 통제를 강화하자" - 호패법(戶牌法) 재실시: 호패법은 태종 때 처음 시행되었으나 흐지부지되었다. 이를 다시 강력하게 시행하여 인구 파악 및 군역 대상자 확보를 통해 중앙 집권을 강화하려 한 왕은 세조이다.
지방 세력 통제 강화 : 세조는 지방의 유향소를 폐지하고 수령의 권한을 강화하는 등 중앙 집권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했다.
"이에 반발하여 함길도에서 이시애가 일으킨 난을 평정한 공으로 적개공신에 책봉되었습니다." - 이시애의 난 : 이 사건은 이 문제의 결정적인 단서이다. 이시애의 난은 1467년, 세조의 중앙 집권 강화 정책(특히 함길도 출신 지방관 임용 제한 등)에 반발하여 함길도(함경도)의 토호 세력이 일으킨 반란이다.
적개공신(敵愾功臣) - 이시애의 난을 진압한 공신들을 '적개공신'이라고 한다. 오자치가 이 공신에 책봉되었다는 것은 그가 이시애의 난 진압에 공을 세웠음을 의미한다.
위의 단서들을 종합해 볼 때, (가)에 해당하는 왕은 세조(世祖)이다. 따라서 보기 중에서 세조의 재위 기간(1455년 ~ 1468년)에 있었던 일을 찾으면 된다.
① 간경도감이 설치되었다. (○) - 세조 때의 대표적인 사실입니다.
② 조선경국전이 편찬되었다. (×) - 조선경국전은 조선 건국의 기틀을 마련한 법전으로, 정도전이 편찬하여 조선의 초대 왕인 태조에게 바쳤습니다.
③ 국조오례의가 완성되었다. (×) - 국조오례의는 국가의 다섯 가지 중요한 의례(길례, 가례, 빈례, 군례, 흉례)를 정리한 의례서입니다. 세조 때 편찬을 시작하였으나, 완성된 것은 그의 손자인 성종 때입니다.
④ 부민고소금지법이 제정되었다. (×) - 부민고소금지법은 아랫사람(부민)이 수령(상관)을 고소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입니다. 이는 왕권을 강화하고 수령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 태종 때 제정되었습니다.
⑤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가 제작되었다. (×) -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는 현존하는 동아시아의 가장 오래된 세계 지도 중 하나입니다. 이 지도는 태종 때 제작되었습니다.
따라서 정답은 ① 번입니다.
★ 개인적으로 만드는 기출문제 해설이기 때문에 공부를 하시다가 오류사항이 있으실 경우에는 댓글로 남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제74회 심화 기출문제 해설 (31번~40번) (3) | 2025.06.17 |
---|---|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제74회 심화 기출문제 해설 (21번~30번) (10) | 2025.06.15 |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제74회 심화 기출문제 해설 (1번~10번) (1) | 2025.06.06 |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제73회 심화 기출문제 해설 (41번~50번) (3) | 2025.03.13 |
한국사능력검정시험 제73회 심화 기출문제 해설 (31번~40번) (0) | 2025.03.12 |